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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낡은 서랍속의 노무현 - 헌트님의 블로그에서 세상을 기록하다



내 낡은 서랍속의 노무현, Again 2002
2005년 7월 25일 여준영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두번 공부했다.

그의 지지도가 최악이던 2005년 봄
청와대로부터 "대통령 이미지를 회복 시키라" 는 미션을 받았다

개혁 대통령, 능력있는 대통령, 국가 최고 경영자
비전과 리더십의 대통령, 투명성,도덕성,소신의 대통령
화합과 구원의 대통령, 일하는 대통령, 권위있는 대통령등
화려하고 폼나는 여러가지 아이덴티티를 다 버리고

청와대가 내게 요구한, 그리고 대통령이 희망한 자신의 아이덴티티는
단 하나  "국민과 함께하는 대통령" 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순진했다


두번째 공부는 이듬해 초
대통령 임기를 정확히 절반 남겨둔 시점에서
하반기 기조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에 대한
워크샵을 진행해달라는 청와대 요청을 받고  
다시 그를 공부했다.
그리고 북한산 자락 한 숙소에 청와대 비서관들을 다 모아놓고
내가 공부한 그에 대해 발표했다



내가 "공부"라고 표현한것은
정말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그가 하루, 한달, 일년을 어떻게 사는지  일정을 정밀하게 분석했고
그가 했던 말들을 다 주워 담아 읽고
그를 만났던 사람을 만나 그에 대해 물었고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로부터 왜 그가 싫은지 들었다
물론 그 이전의 대통령들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인데 옆에서 보면 감상적인 대목이 있다
인간적인 면모가 뛰어난 사람이다
눈물 보인적이 여러번 있다. 최근에 무슨 유족을 만났을때도 눈물을 훔치더라
대중 정치인으로서는 이런 모습이 확실히 장점이고
선거때는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었는데 지금은 (청와대 안에 있다 보니) 그렇지 못하다.
(우리처럼) 직접 만나 본 사람들만 그의 그런 좋은 면을 알수 있다"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그와 전쟁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날카로운 각을 세웠던 언론사의 청와대 출입기자가 내게 해준 말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좋은 사람을 공격하지요 ?" 하고 묻자
기자는 사람좋은건 사람좋은거고. 라고 선을 그었다


그를 공부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를 옆에서 본 사람은 다 그를 좋아한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중에 그를 옆에서 직접 본 사람은 별로 없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다 그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는 않고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다 그를 싫어한다고 말한다.

그에 대해 공부할 수록
그런 내 생각을 확신으로 바꿔주는 증언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DJ는 재임시 준비된 자료를 그대로 활용했다
특정 사안이 있으면 그 기간동안 어느 자리를 가도 똑같은 말을 그대로 한다
반면 VIP (노무현 대통령을 말한다) 는
취지는 비슷한데 표현방식이나 비유가 변화 무쌍하다
기조가 같더라도 표현이 다르면
계속 본사람들이야 취지를 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역시 그와 반대편 길을 걷던 언론사의 기자가 내게 해준 이야기다.


또 청와대 측근들은 이렇게 푸념했었다.

" 원외 정치인으로서 대통령 후보일때는 기존의 뺀질 뺀질한 정치인보다 신선한 이미지 였으나
대통령이 된 후에는 대통령에 기대하는 이미지에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뭐야 대통령 맞아?" 이런 반응이 국민 사이에 나올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자신이 그런 이미지를 바꿀 생각이 없었다.
그는 끊임없이 "왜 대통령이 그래야 하냐" 라고 되물었다
이미지를 관리한 다는 것 자체를 아주 싫어한다
그게 지나쳐서 메시지 관리도 잘 안된다"



컨설턴트 입장에서 "이미지 관리"자체를 거부하는 그는 좋은 고객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지는 관리하는게 아니라는 걸 컨설턴트인 나는 또 잘 알고 있다. 그가 옳다


최근 그의 도덕성에 상채기를 냈다는
박연차 게이트
언론의 생중계를 지켜보면서
내 짧은 머리로는 잘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었다
대게 뇌물 수수에 대해 수사과정을 보도할때 (아니 사실 수사 과정에 이번 처럼 호들갑 떨지는 않았었지만)
그 절반정도는 "댓가성" 에 대한 이야기에 할애 하게 되어있었는데
이번 수사와 보도는 그렇지 않았었다.

친하게 지내는 판검사 형들을 만날때 마다
국민학생처럼 물어봤다

"형. 저는 도무지 이해가 잘 안가는데요
노무현씨하고 박연차씨는 친구잖아요
다른 관계가 아니라 그 둘 사이의 일이라면
증여세 포탈 정도 말고  또 무슨 죄가 있는거지요 ?
저도 판사하는 후배들, 교수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걔들은 돈이 없어요
그래서 그친구들 한테는 늘 제가 술사는데  그렇다고 그 친구들이 나한테 뭐 해준거 없어요.
그거랑 많이 다른건가요 "


설사 내 질문이 나이브 하다 치더라도
어쨌든 그를
개발이란 이름하에 독재를 하고
사람을 총칼로 죽이고
수천억으로 치부하고 사치한 사람들과
비슷한 부류의 "전직"으로  분류해버리는 여론은
좀 속상했다.



몇달 전 아내가 나를 흔들어 깨웠었다
=최진실이 자살했대
+에비. 그런 거짓말 하는거 아니야. 나 좀 더 잘래
= TV켜봐.

오늘 아침에도 그런식으로 나를 깨웠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했대

그런데 오늘은 거짓말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럴수도 있겠구나
아니 결국 그렇게 갔구나 받아들인채 TV를 켰다

뉴스에선 상상할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들 했지만
4년 전 내가 공부했던 눈물많은 노무현은
그럴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는 선수같지만 아마추어였고 천재같지만 바보였고 강한척 했지만 약했고
무엇보다 정치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2005년 내가 청와대에서 발표한 프레젠테이션의 제목은
Again 2002 였다.
2002년 겨울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가장 사랑하던 때였다.
그리고 그 첫장은
VIP 입장에서 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내가 대통령 입장이 되어보니 언론과 국민들에게 조금 "서운"하길래
그 내용을 그대로 적었었다.
오늘 서랍을 뒤져 보니
컨설팅을 하기 위해 빼곡히 채웠던 메모장의 맨 마지막엔
이런 메모가 있다.


"보통 대통령이 되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얻게 되기 때문에
야당시절과 생각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그 변화가 적었다.
별로 달라진 생각이 없었다
대통령 본인은 달라진게 없는데 국민의 기대가 달라진 것이다."  



그에게 변했다고 실망한  국민들.
사실 변한건  우리일지도 몰라.
자꾸 눈물이 흐른다.




@ 하늘에서 again2002 하실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원본 출처 http://prain.com/hunt/bbs/zboard.php?id=peopl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3

[이정전 칼럼] 세종시, '효율과 신뢰' 중 중요한 것은? 세상을 기록하다

세종시문제를 다루는 민관합동위원회가 정식으로 출범하면서 세종시 논쟁은 제2라운드로 옮겨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폭넓게 여론을 수렴해서 좋은 대안을 만든다고 겉으로는 공언하고 있지만, 위원회 발족 이후 재벌총수들과의 만남을 포함한 총리의 잰 행보로 보면 세종시 원안의 파기는 분명해 보인다.
세종시 원안은 9개 정부부처를 중심으로 한 행정복합도시의 건설이었다.
참여정부 때에는 "행정복합도시"를 줄인 "행복도시"라는 애칭이 자주 이용되었는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부터 이 애칭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과연 국민과 약속한 원안대로 가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그 대신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기업도시를 만드는 것이 좋을지 면밀히 따져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 이전에 왜 세종시 원안을 수정해려 하는지부터 좀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종시 원안의 수정을 추진하는 측이 강력하게 내세우는 논리는 경제적·행정적 효율이다.
정부의 주요 부처가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으면 경제적으로나 행정적으로 막대한 낭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일단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효율도 중요하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골고루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다.
우수한 단일민족임을 늘 자랑하는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우리 모두가 골고루 잘 살아보자는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도, 대통령도, 여당 실세도 여기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적으로나 행정적으로 낭비를 줄이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세종시를 기업도시로 만들면 대한민국 국민이 골고루 행복하게 잘 살게 될까?
 세종시 수정을 추진하는 여권인사들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들은 낭비를 제거해서 효율을 높이면 자동적으로 우리 국민들 모두가 더 행복해진다고 믿고 싶을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의 실세들은 효율에 대한 맹신에 빠져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믿고 있을까?
경제학의 시각에서 그들의 생각을 풀이해보자.
효율이란 요컨대 적은 희생(시간과 돈)으로 더 많이 생산함을 의미한다.
더 많이 생산하면 더 많은 소득이 창출되면서 그 혜택이 부자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에게 흘러내려간다.
마치 물이 떨어지면 땅으로 스며들어가 번지듯이 소득도 부자들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가면서 퍼진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낙수효과(trickling effect 혹은 trickle-down effect)라고 부른다.
요컨대 효율을 높이고 경제성장을 이루면 낙수효과를 통해서 온 국민이 골고루 잘 살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시장주의자나 신자유주의자는 낙수효과를 굳게 믿으면서 효율과 성장을 복음처럼 전도한다.
여권의 많은 인사들이 이 신자유주의 복음을 맹신하고 있다.

그러나 낙수효과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한낱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IMF경제위기 이래 지난 1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그리고 이 덕분에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의 빈부격차는 급속도로 벌어지고 있다.
왜 그런가?
경제성장의 결과로 창출된 소득이 아래로 흐르지 못하고 저 위 고소득계층에 고여 있기 때문이다. 낙수효과가 아주 미약하다.

▲ 화폐금융학자 출신인 정운찬 총리는 사실 '돈의 흐름'에 있어 누구보다 전문가다. 정 총리가 위원장을 맡아야할 것은 세종시가 아니라 위로만 향하는 돈의 흐름에 관한 위원회다. ⓒ연합
돈은 물과 다르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돈은 위로 흐른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경영학자들은 우리 사회에 승자독식이 퍼지고 있다고 말한다.
승자독식이란 혼자 독차지한다는 뜻이다.
승자독식이 만연하면 돈이 퍼지지 않고 한 군데 몰리게 된다.
낙수효과가 점점 없어진다.
IMF경제위기 이후 빈부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돈이 아래로 흐르지 못하게 가로 막는 여러 가지 장애가 우리 사회에 있음을 의미한다.
아무리 효율을 높이고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한들 이 장애가 존재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이 골고루 잘 살기는 틀렸다.

돈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는 상황에서 효율만 높이고 생산만 많이 한다면
저 위에 고인 돈만 불어나고 결과적으로 부자들의 배만 불려준다.
그렇다면 경제적·행정적 효율을 위해서 세종시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외치기 전에
도대체 무엇 때문에 효율을 높여야 하는지부터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돈이 아래로 흐르지 않는 이유를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더욱이 정운찬 총리는 돈의 흐름에 관한 한 우리나라 경제학자들 중에서 최고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돈이 왜 아래로 흐르지 않는지를 연구하는데 그만한 적임자가 없다.
정운찬 총리는 화폐금융의 전문가지 도시문제 전문가가 아니다.
따라서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을 것이 아니라 돈의 흐름을 연구하는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야 옳다.

물과 돈은 흐르는 방향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한 가지 같은 점도 있다.
물이나 돈이나 한 곳에 고이면 썩는다.
돈이 한 곳에 많이 고이면 부정부패의 온상이 된다.
비자금이니 떡값이니 하는 것들도 돈이 고여 있는 곳에서 나오는 법이다.
사실,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부동산 투기도 돈이 아래로 흐르지 못하고 높은 곳에 고여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예를 들어서, 매년 발생하는 수백 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가 소수의 상위계층 사람들에게 집중된 결과,
이들 각각이 수억 원 내지 수십억 원의 목돈을 쥐게 되었다고 해보자.
지난 반세기를 돌아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 투기처럼 수익률이 높은 것이 없다.
그러니 큰 목돈을 쥔 사람들은 자연히 부동산시장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반대로 가령 무역수지 흑자가 대한민국 각 가구에 골고루 분산된다고 해보자.
각 가구가 만질 수 있는 돈은 기껏해야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 불과하다.
그런 돈으로 무슨 부동산 투기를 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부정부패를 줄이고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기 위해서도 우리 사회에서 왜 돈이 상위계층에서 하위계층으로 흘러내려가지 않는지를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 이전에는 더 이상 효율이니 성장이니 하는 것들을 떠들지 말자.

세종시를 기업·과학도시로 만드는 것이 효율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때 달성하는 효율은 반짝 효율이요 일시적 효율일 가능성이 높다.
일시적으로는 얻는 것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잃는 것이 많다면 그런 효율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참된 장기적 효율은 사람들 사이의 굳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효율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정말 사려 깊고 솔직하기 때문에 온 국민이 대통령을 굳게 믿고 따른다고 해보자.
이럴 경우 대통령의 한 마디면 모든 일이 척척 진행된다.
국회에서 법안처리도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요 예산심의도 원만히 이루어질 것이다.
지도자와 국민이 한 마음으로 뭉쳐서 일을 척척 해나가는 것처럼 이 세상에 효율적인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나라는 너무 효율적이어서 무서운 나라가 된다.


옛날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제나라가 그랬다.
제나라는 춘추전국시대에 중국에서 가장 부유했고 학문과 예술이 가장 번성하였다.
어지럽게 분열되어 있던 중국에서 제환공(제나라의 왕)이 한 마디 하면 다른 나라의 왕들도 군말 없이 믿고 따라 주었다.
수시로 모든 왕들을 불러다 놓고 회의를 주재했다.
그래서 제환공은 춘추전국시대에 중국 전체를 호령하는 패자가 되었다.
제환공을 중국의 패자로 만든 인물이 바로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재상으로 꼽히는 관중이다.

재상으로서 관중은 신의로 나라를 다스렸다.
관중이 얼마나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를 여기에 다시 소개한다.
제나라가 노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겨서 노나라 땅의 일부를 할양받는 조건으로 강화조약을 맺게 되었다.
그런데 회담장소에서 노나라 장군 한 사람이 갑자기 제환공에게 달려들어 목에 비수를 들이대며 노나라 땅을 포기할 것을 공식 선언하라고 협박하였다.
겁에 질린 제환공이 포기선언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 장수는 얼른 제 자리로 돌아가 시치미를 떼고 앉아 있었다.
뒤늦게 화가 난 제환공은 방금 전의 선언이 무효임을 주장하려 했으나 관중이 나서서 말렸다.
아무리 협박에 의한 것이라도 군주가 한 번 선언한 약속을 어기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간곡하게 간하였다.
제환공도 그 깊은 뜻을 알아차리고 관중의 권고에 따랐다.
비록 잘 못된 약속이라고 하더라도 지키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아차릴 만큼 제환공은 영특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선거 유세 때에도 세종시 원안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노라고 공개석상에서 수없이 다짐하고 약속하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세종시 원안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추진할 수 없다며 말을 바꾸었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 어떻게 추진하느냐며 여권의 실세들도 가세하였다.
이들은 일시적 이익만 생각하고 장기적인 손해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이들은 대통령과 여권 실세들이 국민의 신뢰를 잃음으로써 장기적으로 야기되는 경제적·정치적 비효율의 폐해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하기는, 이들은 자기 임기 동안만을 생각하기 바쁘니 장기적 손실을 생각해볼 틈도 없을 것이다.

제나라가 신뢰를 바탕으로 중국의 패자가 될 수 있었다면 은나라에 이어 중국을 통일한 주나라는 신뢰를 잃음으로써 망했다.
주나라(서주) 마지막 왕인 유왕은 포사라는 여인을 익애하였다.
우리나라에는 경국지색(나라를 망하게 할 정도의 절세미인)이라는 말이 별로 없는데, 중국에는 나라가 망할 즈음이면 경국지색이 나타난다.
포사는 경국지색이었다.
미모 덕분에 황후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포사는 절대 웃지를 않았다.
왕은 포사가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러던 차에 하루는 국경수비대의 병졸들이 실수로 잘못된 봉화대 신호를 올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봉화대의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고 수도에 큰 변고가 발생한 것으로 생각한 수도방위군 장군들이 궁성을 구하기 위해 군사를 끌고 급히 달려 왔는데, 봉화대의 신호가 잘못 올라간 것이니 돌아가라고 왕이 말하자 장군들이 모두 황당해 하였다.
장군들이 우왕좌왕하는 꼴을 보고 포사가 깔깔대며 웃었다.
포사가 웃는 모습을 보자 왕은 크게 기뻐하였다.
그 후로는 포사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을 때마다 왕은 국경수비대에게 봉홧불을 피게 하였고, 속아서 달려온 수도방위군 장군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본 포사는 깔깔댔다.
그러나 정말 북쪽 오랑캐가 수도를 침범하였을 때는 장군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왕이 완전히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결국 주나라 왕은 오랑캐에게 잡혀죽고 이로 인해 주나라(서주)는 망했다.

사실, 명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숭정제는 방탕하고 무능한 황제가 아니었다.
그는 사태를 잘 파악하였으며 기울어진 국운을 바로 세우려고 혼신을 다하였던 군주였다.
그러나 그는 수시로 말을 바꾸는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청나라 군사가 궁성 앞까지 쳐들어 왔을 때의 일이다.
황제는 북경 시민들에게 청나라에 대항해 싸우면 상을 내리겠다고 약속하였다.
어찌 어찌 해서 결국 청나라 군사가 물러갔다.
하지만, 황제는 상을 내린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북경시민들이 싸워주었기 때문에 청나라 군대가 물러났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여권 실세의 표현을 빌리면 '잘못된 약속'이었다는 것이다.
황제 자신은 합리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숭정제가 밤잠을 줄여가면서 열심히 일을 했어도 신뢰를 잃으면 장기적 효율을 달성할 수 없다.
그래서 명나라는 망했다.

세종시 수정을 추진하고 지지하는 여권 실세들의 말을 들어보면 정치가의 신뢰 따위는 헌신짝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너무 효율과 성장에만 집착하고 있는 탓이리라.
우리의 정치가들이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면서 신뢰를 찾고 신뢰를 소중하게 여기기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


'악법도 법'은 들어봤지만, '불법도 법'이라니... 세상을 기록하다

10월 말 '잊혀진 계절'에 생긴 판결 하나는 역사에서 결코 잊히지 않을 것 같다. 29일 이루어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판결은 가히 인류사에 파장을 일으킬 만한 반동성을 띠고 있다. 이것은 '수단과 과정이 정당해야 목적과 결과가 정당하다'는 인류의 고색창연한 윤리·도덕을 일거에 전복시켰기 때문이다.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들어 봤지만, '불법도 법'이라는 말은 난생초문이다.


 

보편적 윤리 전복시킨 헌재의 미디어법 판결


헌법재판관들은 법안의 표결 처리 과정에 불법 행위가 있었음을 '다수 의견'으로 채택하고서도 법안의 효력정지가처분 판결에서는 기각판결을 내렸다. 이는 불법 행위를 다수 의견으로 인정하고서도 정작 법안의 유·무효를 가리는 판결에서는 똑같이 '다수 의견'으로 유효하다고 채택함으로써 심각한 '이상증세'를 노출한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논리라는 것이 있기는 하다. 헌재의 논리는 표결 처리 과정에서 피청구인 측의 대리투표 행위가 있었고 그들이 일사부재의 원칙을 어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헌법을 위배할 정도의 중대한 행위는 아니므로 통과된 법안은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1997년 국회의장의 변칙적인 노동법 법률안 가결선포행위(이른바 날치기)에 대하여 무효가 아니라고 판결했던 헌재 판례를 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미디어법 무효소송 기각판결은 1997년의 노동법 날치기 법안 유효 판결과는 사뭇 다른 성격을 가진다.

 

올여름 7월 22일 벌어진 국회의 미디어법 표결 처리에서는 날치기뿐 아니라 대리투표라는 범죄 행위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다(한나라당의 부인에도 이사철 의원은 버튼을 다섯 번이나 누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이 법의 표결처리에는 '일사부재의 원칙 무시'라는 위법 사실이 작용하기도 했다. 헌재는 방송법 개정 표결에서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투표 종결을 선언한 뒤 의결 정족수에 미달하자 재투표를 실시해 가결선포한 것은 민주당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6대 3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이 법에 대한 가결선포가 무효인지에 대해서는, "국회법 제92조의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의 점 또는 국회법 제93조의 법률안 심의절차를 반한 점은 인정되나, 입법절차에 관한 헌법규정을 위반했다는 등 취소 또는 무효로 할 정도의 하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7대 2로 기각했다.

 

진보신당의 조승수, 민주당의 정세균 의원 등은 바로 이러한 점들 즉 대리투표와 일사부재의 원칙 위배 그리고 법안의 심의 부재 등을 문제 삼아 헌재에 법안무효심판을 청구했었다.

 

결국 이번 헌재의 판결은 형사법과 국회법을 동시에 위반한 범죄행위의 결과에 유효성 또는 정당성을 인용(認容)해 준 꼴이 되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법은 윤리·도덕의 최소한일 따름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법치주의나 민주주의를 논하기 이전 인류의 보편적인 윤리·도덕 영역에 반동하려는 징후를 보인다는 점에서 심각한 수준의 맹목성을 띠고 있다.

 


그들의 맹목성은 이기주의와 보신주의

 

7인의 재판관들, 즉 이강국· 김종대· 이동흡· 목영준· 민형기· 이공현· 김희옥 제씨는 방송법 법안 무효청구를 기각한 당사자들이다. 이 중에서 김희옥을 제외한 6인 제씨는 신문법 법안무효청구에도 기각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무엇이 이들 7인의 재판관들을 맹목적으로 만들었을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헌법재판소의 최근 이력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첫째 2004년 4월 29일, 헌재는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 결정에 대한 위헌 소송을 기각한 바 있다. 당시 헌재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사안으로 이에 대하여 사법적 기준만으로 심판하는 것은 자제하여야 하므로 각하한다"고 판결했다.

 

이처럼 헌재는 군대 외국 파견 문제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 회피한 것이다. 이것은 표면상 '소극적 사법주의'의 발로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먼저 여기서 언급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란 말은 무슨 뜻인지? 법원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에도 사법적 판결을 내렸지 않은가.

 

결국 이것은 자기들의 기각 결정을 합리화하려는 궁색한 '레토릭'이거나 아니면 강대국 미국의 파병 요구에 순응하는 정부의 결정에 반대의사조차 내지 못하는 사법적 패배주의의 면모를 보인 것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한국의 헌재에는 이토록 나약한 면모가 일찍부터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둘째 2004년 5월 14일, 헌재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기각한 바 있다. 당시 헌재는, "일부 행위에서 헌법과 법률 위반이 인정되나 탄핵을 인용(認容)할 정도의 중대한 사유는 아니므로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물론 비헌법적이고 비이성적이었던 국회의 탄핵 소추를 기각한 것은 정당한 판결이었다. 하지만 헌재는 그러면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법률과 헌법을 위반한 것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것은 당시 탄핵안을 발의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편을 형식상 들어준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말대로 법률과 헌법을 위반했으면 탄핵하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이다. 헌재는 이번 미디어법 표결은 헌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므로 유효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로써 볼 때 이번에 나타난 헌재의 모순과 눈치보기식 양비론은 사실 진작부터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셋째 2004년 10월 21일, 헌재는 노무현 정부의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위헌 소송에,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에 위배되므로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당시 한 재판관은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경국대전>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서구식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은 한국은 당연히 성문헌법의 나라이다. 그런데 그들은 난데없이 '관습헌법'을 운운하면서 600년 전의 <경국대전>까지 들먹인 것이다. 아무튼 군대 파견은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라며 소극적인 체하면서 찬성해 준 그들이 자기들의 본거지인 서울이 수도로서의 가치를 잃게 될 것 같으니까 돌연 적극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넷째 2008년 11월 13일, 헌재는 종합부동산세법 위헌소송에 매우 복합적인 판결을 내렸다. 헌재는 종합부동산세 제도 자체는 '합헌', 세대별 합산 규정은 '위헌', 주거목적 1주택 장기보유자 부과 및 주택 외에는 다른 재산이 없는 자에 대한 세금 규정부분은 '헌법불합치'라는 복잡한 판결을 내린 것이다.

 

종합부동산세 자체가 합헌이라면 당연히 세대별 합산이나 1주택 보유자일 경우에도 이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헌재 재판관의 대부분은 이 세금의 부과 대상이었다. 그들은 종합부동산세가 형식상으로는 합헌이라면서 실제적으로는 그것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렇듯 보신, 이기적인 판결만을 일삼는 헌법재판소의 존재 의의가 과연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런 정도의 판결이라면 대법원이나 헌법위원회라도 능히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9명의 헌법재판관 중에는 야간옥외집회금지가 합헌이라는 의견을 낸 사람도 두 명 들어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년 동안 사무실 이전 배치 경비만으로도 10억 5000만 원을 썼다고 한다. 다수의 국민은 더 이상 무용한 '영감님'들의 지위 보전을 위해 세금을 낭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소설쓰는 법관" 판결문 능가하는 댓글들

 

네가 살인자인 것은 맞다. 하지만 사람을 다시 살릴 수는 없으니 그냥 무죄로 하자.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기각 판결은 '세계 판결사'에 길이길이 남을 것 같습니다. 과정은 불법이나 미디어법은 유효하다? 대한민국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대리시험을 보거나 커닝을 해도 그냥 유효하게 인정을 해줘야 하나요? 이게 헌법재판소에서 내린 판결인가요? 다가오는 수능에 아이들이 핸드폰을 지참해도 되겠네요. 어떻게 초딩 1년만도 못한 건지요?

 

정말 한심한 기관이 존재한다고 국민들은 생각할 겁니다. 헌법재판소 무용론도 나올 것입니다. 재판관들께서 이런 내용을 가지고 국제회의에 가서 한 번 발표해 보시기 바랍니다.

 

차라리 미디어법은 처음부터 유효하다고 거짓말을 하지, 왜 뜬구름 잡는 판결을 내리셨습니까? 법관이 소설 쓰는 경우는 처음 봤습니다. 오늘 판결문은 아이러니의 진수를 보여주셨습니다. 표면과는 반대의 판결을 창작하시느라 고생이 참 많았겠습니다.

 

이처럼 헌법재판소 게시판에 올라온 누리꾼들의 한결 같은 반응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헌법재판소의 존재 의의를 묻고 있다. 일찍이 도올 김용옥은 수도 이전에 위헌 심판을 내린 7인의 재판관들을 '갑신7적(甲申七賊)'이라고 호명한 바 있다. 도올은 7인의 재판관은 국운 융성의 기회에 재를 뿌린 도적 같은 위인들이라고 지탄했다.

 

왕년의 그들이 '갑신7적'이라면 오늘의 그들은 '기축7적'(己丑七賊)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수단과 과정이 목적과 결과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인류가 오랫동안 합의해 소중한 가치이다. 그들은 이 소중한 가치를 하루아침에 전복시키는 판결을 내렸다.

 

서양문화사 <새벽에서 황혼까지>의 저자 자크 바전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는 세 가지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것에는 '의사들의 장사꾼화'와 '기자들의 속물화'에 '법관들의 모리배화'가 하나 더 추가된다. 조금 섬뜩하긴 해도 자크 바전이 저서에 남긴 말을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법률가는 더 이상 훌륭한 법률가와 비열한 법률가로 양분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의 <헨리 6세>에 나오는 "법률가는 모조리 죽여야 한다"는 대사는 이제 관용어로 자리 잡았다.

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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